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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aside> 🧌

학부생 시절, 그러니까 정확히 전공 필수였던 ‘한국영화사’ 수업에서 <아리랑>을 처음 마주했다. 그러나 민족 영화의 기원이자 조선영화의 미학을 확립했다는 이 영화를 필름이 유실돼 볼 수 없다라는 사실은, 당시 열정 가득했던 영화학도에겐 꽤나 서글픈 일이었다. 그때의 안타까움을 ‘왓챠피디아’에 기록했었다.

그 5점을 준 사람이 바로 나다.

그 5점을 준 사람이 바로 나다.

2015년도 한국의 영화과 입시를 보기 위해서는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926>,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20>와 같은 외국 영화를 분석하고, 공부하며 유럽 영화 사조를 달달 외우는 것이 필수 덕목이었다. (물론 모든 영화과 입시생이 영화에 미친 성실한 씨네필이었다면 필요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 때문인지 영화과에 입학을 해서도 나에게 한국고전영화라는 개념은 생소했고 또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과제의 일환으로 마주한 한국 고전 영화의 흑백 영상들은 ‘힙’한 ‘총체적인 무언가’였다. 불완전한 컷들과 선명하지 않은 사운드들이 힘을 다해 묘사하는 당대의 한국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벅차오르기도 했달까. 이후 계속 영자원(한국영상자료원)을 방문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나란히 한국고전영화 콜렉션을 시청한다든가, 한국고전영화의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을 열심히 베끼고 묘사하며 그들의 혼과 얼을 어떻게든 베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사회인이 되어 이런 저런 경험들을 안고 살다가 어떻게 융합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 작업들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왔는데, 도통 무슨 작업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의무감으로 ….내가 배운 것들을 써먹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 흑백의 ‘한국고전영화’가 생각이 났다.

강박적으로 내가 배웠던 ‘영화’와 AI의 ‘재현’ 이 두가지를 섞어야 했다. 앞으로의 작업 출발점으로 삼기 좋았다. 이 공식의 결론은 <아리랑(1926)>을 재현해보는 실험과 연구가 되었다.

나는 사실, 이때까지 창작자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세상 그대로를 해석해주는 장치가 ‘AI’ 라고 생각하기에 인공지능을 이용한 작업들에 몰두했었다. 만들어진 모델의 데이터들의 양과 그 결과물이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차별과 고정관념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이번 작업에서도 그랬다. 유실된 필름이라는 비극적 작품 <아리랑> 재현에 초점을 맞췄지만, 한국의 고전 영화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고 이상한 작업이었다.

작업 툴이었던 [Runway](https://runwayml.com/]), Midjourney를 만들고 개발한 사람들이 동양의 것들이 아닌데 이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한국의 복식? 20세기 한국의 풍경? 외국의 개발자들은 알 바가 없고, 당연히 관심도 없을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멋.지.게>> <<FINE>> 하게 “재현”만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멋진 구현은 프롬프트를 입력할 수 있는 창작자, ‘아무나’가 할 수 있다. 차별적인 데이터들에서 내가 하는 이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냔말이다. 그래서 그냥 모든 혼란과 이상함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작업은 (안)재현하기가 될 것이다. 멋지게 재현하는 것은 타의적으로, 자의적으로 실패이다. (아리랑은 이용당한). 뭐, 변명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시점에서 (급하게) 나운규 감독님의 자서전 책의 한 구절을 가져온다.

…그러나 생명은 걸지 못했다. 내가 아리랑을 제작하기 전 1,2년은 조선 영화 제작 사업이 무서운 난관에 걸린 때다. 조선 사람이 나온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조선 영화는 따분하다. 졸음이 온다, 하품이 난다. 돈 내고 볼 재미가 없다. 이런 소리가 나오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홍행은 되지 않고 당사자들은 어쩔 줄을 모르는 때였다.

그 당시에 조선에 오는 서양 영화를 보면 수로는 서부 활극 전성시대요, 또 대작 연발시대다. 그리피스 D.W. Grifiuh의 <풍운의 고아 (Orphans Of The Storm)>를 보던 관중은 참다 못하여 발을 굴렀고, 그리피스의 <로빈 후드>는 조선 관객의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이런 때에 졸리고 하품나는 조선 영화를 보러 올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갈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한 연구생으로(지금도 그렇지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쫓겨다니던 나는, 어떻게 하면 조선 영화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하고 밤을 새워가며 애를 썼으나, 관객과 나날이 멀어져 가는 원인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대로 탄식만 하다가, 선배 이경손 선생에게 "화나는데 서양 사람 흉내를 내서 한 작 품 만들어 봅시다" 하고 말했더니….

-조선영화의 길 90p-

당시 기록에 따르면, 나운규 감독님의 작업 동기는 외국 영화가 대거 유입되던 시기에, 한국적 정체성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리랑(1926) 영화도 결국 하나의 기록이다. 기록하는 건 꽤나 중요한 일 일수 있다. 데이터 차별을 타파하는 방법으로는 당연히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한국 데이터를 더 많이 넣어 학습하면 되고, 한국의 모델을 만들고, 기술을 고도화시켜 한국만의 AI 이미지는 만들어내면 될 것이다. 미래에는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그냥 지금, 현재를 기록한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서 나는 현재 기술쪽으로 도망간 상태이다. (물론, 예술과 기술 다 잘 모르지만 그냥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자가 증식처럼 발전하는 기술들은 정말이지, 재밌는 먹잇감들이다. 고도화된 테크들이 많아진다는 건, 나에게 발화할 수 있는 도구가 많아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냥 계속해서 알아가고 싶은 것 뿐인데, 근데 정말,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죄책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왜 소중했던 무언가를 포기하고 져버린 그런 느낌이 드는 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이상하고 과잉된 부채감을 발판삼아 내가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내기로 혼자 타협했다. 재밌고 멋지고 그리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들을 연구할 예정이다. 이 작업이 그 하나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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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역사


작업 ; 아리랑 (안) 재현하기

1. 작업 방향

<aside> 📜 폐기 되기도 한 작업 후보군들 (RIP … )


2. 남아있는 아리랑의 시놉시스